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이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자신보다 지식이 더 뛰어나고 취향이 고상한 사람이 없는데, 누구를 부러워하고 무엇을 아쉬워 하겠는가? 우리는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해야 한다. 최고의 행복은 스스로 신처럼 자족하며 살아갈 때 얻을 수 있다.
타인을 알아가고 가까이 사귀어 친분을 공고히 하는 것을 사교 혹은 교제라고들 하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회 속에서 타인과의 교제를 통해 자신의 순수성을 현저하게 잃어간다. 심지어 비열해지기까지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 강인해져야 한다. 타인의 주장이나 인간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물들지 않고, 휩쓸리지 않고 본래의 자신을 지켜나가야 한다. 세상의 파도 속에서 사교적으로 살면서도 표류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언가를 버리는 단호함과 용기,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런 자만이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고독 속에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뛰어난 사람들이 평범한 세상 사람들과 교제해서 무슨 기쁨을 얻겠는가?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교제하려면 자신의 본성에 깃든 가장 저급하고 비열한 부분, 다시 말해 일상적이고 비속하며 천박한 부분을 매개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공동체는 그런 관계를 토대로 존립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수준을 뛰어난 사람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뛰어난 사람들의 수준을 자기들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립과 고독에의 경향을 기르는 것은 귀족적 감정이다. 고독은 뛰어난 정신을 지닌 사람들의 어찌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대화는 서로를 이해하게 하지만, 천재를 만드는 것은 고독이다. 온전한 작품은 한 사람의 예술가가 혼자 하는 작업으로 탄생한다.
‘혼자 있는 능력’은 학습과 사고와 혁신을 가능하게 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게 하고 상상이라는 내면 세계와 늘 접촉하게 하는 귀중한 자질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해도 창의적인 상상력의 개발로 치유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질서를 만드는 것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창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다는 데서 생긴다.
다른 사람들보다 깊고 넓은 사고의 폭을 가진 사람은 조직이나 파벌에 속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 같은 사람은 어느 사이엔가 조직과 당파의 이해를 초월하여 한 차원 높은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조직과 파벌이라는 것은 고만고만한 도토리의 집합체, 작은 물고기의 무리와도 같아서 사고방식까지도 보통 사람의 틀 안에 가두어 버린다. 그러므로 사고방식의 차이로 조직에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하여 자신만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것은 조직이라는 좁은 세계를 초월한 넓은 차원에 이르렀기 때문일 수도 있으므로.
행복이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