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을 생각하면 기억나는 나무가 있다. 할아버지 집 뒷 쪽, 경로당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큰 나무였는데, 나는 걸음이 느린 할아버지를 뒤돌아 보며 했던 말이 기억난다. “할아버지! 이 나무는 엄청 크고 엄청 뚱뚱해요. 이거는 내가 이렇게 안아주기 힘들어요. 이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나무인가봐요!” 숫자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다섯 살 꼬마의 묘사치고는 나름 그럴 듯한 표현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느티나무는 백년을 훌쩍 넘어 나이가 이백년은 가까이 되었겠지 싶다. 우리 할아버지 집은 오래 된 아파트였고, 아파트 단지들이 그 나무를 피해서 설계되고 지어진 것까지 고려해 보면.
나는 워낙 개구쟁이였던지라 항상 뛰어다녔고, 할아버지가 걷는 것 만으로도 숨이 차시던 것을 알지도 못한 채 나는 항상 빨리 뛰어오시라고 재촉하곤 했다. 그 커다란 나무를 껴안다가 오르고 떨어져서 지치면 바닥에서 나뭇잎으로 집을 만들고, 엄마가 예쁘게 입혀준 노란색 치마를 입고서는 하얀색 구두가 흙으로 뽀얗게 뒤덮힐 때 까지 그렇게 나는 한참을 뛰어다녔다.
그 뒷뜰에는 햇빛이 잘 들어 항상 나뭇잎이 햇살에 반짝였고, 더운 여름날은 그 나무 아래가 가장 시원했다. 따뜻했고 또 선선했던 그 나무가 있는 곳은 나와 할아버지만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할아버지가 경로당에서 주판으로 뭔가를 하고 계실 때 나는 어김없이 그 근처를 뛰어 놀았고, 집으로 가기전에 새우깡을 사달라고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떼를 쓰던 기억도 그 커다랐던 느티나무를 지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서 슈퍼에 가면 과자 두봉지를 양손에 들고 하나는 언니꺼라며 싱글벙글해 하곤 했는데 나중에 엄마는 할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셨고 여기저기가 아프셨다고 했다. 나는 철이 없어서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나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무와도 함께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나무에게 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 해 나는 열 살이 안됐었는데, 죽음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때라 나는 진짜 아빠 말대로 할아버지가 하늘 나라로 이사를 간 줄로만 알았고,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하러 오는데 왜 아빠는 그렇게나 많이 울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 목소리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빠는 당신의 아버지께선 말 수가 적고 참 무서운 분이어서 아무도 할아버지 물건을 건드리지 않았지만, 내가 유일하게 할아버지 담배를 버렸고 숨겼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내가 예뻐서 도망다니던 나를 꼭 무릎에 앉혀 놓고서는 과자나 초콜렛을 손에 쥐어 주셨다고 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많이 보고싶다. 마지막으로 잡아 본 할아버지 손은 너무 차가웠는데, 가끔 세상이 그 만큼 나에게 차가울 때,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였던 어린 날의 그 곳의 따뜻함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