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았다. 고개는 정면을 향하지도 못했고, 아예 시선은 땅을 향해 있었다. 그것은 극도의 비겁함이었다. 나는 차마 내키지 않는 말들을 시작하며, “단순히 순수했던 지난 날만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면, 그러면.“을 이어갔고, 말을 하면서도 입이 떨어지지를 않는 이상한 기분을 겪었다. 유물론적인 현대 사회의 풍조에 물들어가기 싫었고, 나는 그래서 단순해도 되던 때를 원해서 그렇다고 했다. 소확행이 그리웠던건 사실이니까. 그런 말을 하면서도 정작 내 머리엔 용납되지 않는 것들이 계속 떠올랐다. 이게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지 인연이란 의미를 부여해야 되는건지 도대체가 헷갈렸어. 근데, 아. 그게 없던 일이 될까, 내가 과연 믿을 수가 있을까. 그래 일단,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으면 시간 함부로 쓰지 말고 각자 갈길 가자고.

그 깊은 한숨을 시작으로 질책과 모욕 분노와 짜증 그 모든 것들을 쏟아내는 동안 나는 멍하니 한참을 있었다. 순간 뇌에 손상이 왔고 언어에 장애가 왔나 싶을 정도로 사고가 멈췄고, 한참의 혼돈의 시간이 지난 후에, 말을 더듬으며 한참 후에 본것은 그 얼굴에 지어진 이상한 표정이였다. 아무것도 느끼는 것 같지가 않고, 어떤 것들이 잘못 되었는지는 당최 모르겠고, 예의라는 단어를 집에서 배우긴 했는지를 가늠할 수 조차 없는. 마치 psychopath 같았다. 이런 말들을 하는 것에 자랑스럽고 이 상황을 심지어 즐기고 있는 듯한 그 낯선 표정, 그 표정은 이 모든 것의 시작 어딘가, 그 맨 처음과 똑같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더 돌이킬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이기심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그 마음 가짐에 미쳐있는 눈빛을 보았다. 나는 괴물을 보았다. 그 순간의 내 솔직한 감정은 ‘무서웠다’.

‘나라면 이 정도는’ 그 오만한 말투도, 현실적인 조건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모욕도, 이후로 힘들었고 상처도 많다는 거짓말도, 미안하다는 값싼 동정과 고맙긴 하지만 너는 그저 이용의 대상일 뿐이라는 뻔뻔함도. 이젠 내가 똑바로 볼수가 없었다. 모든 것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섬뜩했던 표정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끝을 알 수 있었다.

– 나는 아직도 스스로가 부끄럽다. 부끄러움은 전부 다 나의 몫이었다. 내 그릇이 크지 못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 같고, 속상해서 마음에 위로가 필요하다며 주변에 감정을 부담지웠던 것 같았다. 근본없는 우월감으로 짓밟아 내리는 탓에 나에게도 열등감이 생겨나는 것만 같았고, 자존심이 상하니까 자존감도 낮아지는 것 같았다. 삶의 태도를 질책하니까 내가 가진 신념도 의심을 하게 되고, 베풀고 착하면 나쁜 세상일까 눈물 짓게 되더라.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한테 업신여겨지는 건 내 잘못이 아닌데, 단순하던 내 사고도 자책으로 꼬여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 안됐는데, 그러지 말걸. 그래서 나는 나의 선택도 지나간 시간도, 했던 모든 말들도, 아직 반성하는 중이고 여전히 스스로가 부끄럽다.

근데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라 좋은 사람들이랑 좋은 얘기하고 행복한 생각 하니까 또 나쁜 마음들이 창피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되더라. 적당히 마음을 회수할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좋은 사람한텐 더 잘해줘야지 라는 생각에 더 마음쓰게 되더라고. 행복이 별건가. 손잡고 출근하면서 서로 니가 더 많이 벌어오라고 장난치면서 그렇게 사는거지. 인생 뭐 있나. 힘든 세상에 든든한 내 편하나 믿고 의지하면서 서로 어떤 말을 해도 제일 재밌으면 되는거지.

그래서 그냥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이제 부정적인 감정 조차도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